인간은 객체인 사물을 선택함으로써 주체가 된다. 사물은 개인의 정체성을 구분 짓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일상의 사물에는 설계자의 태도와 선택자의 태도가 존재한다.
수많은 사물을 자기결정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선택자의 기준을 가시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물을 선택하고 관계 맺는 태도는 디자이너가 디자인하는 태도와 닮아 있다. 사물을 선택하는 사람은 또 다른 디자이너인 셈이다. 나는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내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무엇인가’라는 궁금증을 항상 가졌었고, 그 궁금증은 어느 순간 증폭되어 나를 강력하게 흔들었다. 나는 이러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변화를 꾀하고 나의 기준을 세우고자 했다. 사물의 좌표는 독립 후 1년 동안 나의 시각으로 집의 모든 사물을 들인 아카이브 프로젝트이다.
이사를 위해 집 50군데 이상을 보았다. 전에 살던 곳에서 가져온 사물은 전자레인지, TV, 책상, 책장, 수건, 헤어드라이어. 그 외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선물 받은 것을 제외하고 모두 직접 골라 집에 들였다. 전 집에서 가져온 사물도 TV 제외하고는 모두 사들일 때 내가 고른 사물들이었다. 집에 들인 사물 중 어느 것 하나 집에 쉽게 들이지 않았다. 행주, 뒤집개, 칫솔의 모양, 재질, 색깔 하나까지도... 원하는 나무 접시 꼴을 찾았으나 나뭇결무늬가 부자연스러워 동일 브랜드의 여러 지점을 몇 주간 돌아다니기도 했다. 커튼 하나 때문에 광진구에서 고양시와 광명시를 5~6번은 오갔으며, 러그 때문에 강남, 광나루, 영등포, 고양, 광명, 종각, 잠실을 여러 차례 오갔다. 직접 만졌던 사물들을 다시 아카이브 하면서 과거의 다양한 감정들이 떠올랐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 불안감, 편안함, 고마움, 지겨움, 무력감 등….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선호하는 브랜드를 모두 찾았고 없으면 찾아질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 사물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났다. 요리, 청소, 유칼립투스, 로즈메리, 인센스, 리헤, 쳇 베이커, 드뷔시, 에릭 사티, 노란빛의 조명….

이 사물들을 모으는 과정들. 그것들은 디자이너가 디자인하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준을 세우고 원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노력했으며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다짐했다. 결국 나도 몰랐던 나의 취향을 눈으로 보게 되었고,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묻고 답할 수 있었다. 이 행위에는 단지 집을 꾸민다는 것을 넘어서는 나의 염원이 담겨있다. 이 염원에 따라 난 다음 단계를 또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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